고통의 평준화에 반대한다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여자도 군대를 가는 게 진정한 성평등”이라는 말을 대학 강의실에서 접할 때마다 친절하게 물어보곤 했다. 사회에서 특정 성별이 자연스레 ‘배제되는’ 맥락에 집중하면 애초에 여성의 복무를 상상조차 하지 않은 건 여성이 아니라 남성, 그리고 남성 중심 사고가 만연한 사회임이 분명한데 왜 여성이 마치 징집 거부라도 한 것처럼 바라보냐고 말이다. 물론 반론은 기계적이다. ‘왜 남자만 차별받는 것에는 모른 척하냐’는 논리만 반복된다.

이 수준이 유의미한 여론이라면서 정치권 이슈가 되더니 제도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등장한다. 남자가 국가로부터 차별받는다는 핵심이 사라진, ‘여자는 차별 안 받는다’는 좌표가 틀린 불만을 원초적으로 만족시키고자 하는 고통의 평준화 정책에 어떤 사회적 이익이 있단 말인가. 나는 26개월을 복무했고 이후 만 40세가 될 때까지 예비군, 민방위, 비상소집 고지서를 받았다. 이를 내 아내도 경험하면, 나의 짜증은 별거 아닌가? 내 딸이 ‘군대에 끌려가면’ 아들의 입대 전 불안, 복무 중 고충, 제대 후 불만이 감쪽같이 사라진단 말인가.

 
여성이 군대를 간들 ‘진정한 성평등’이 실현될 리도 없다. 오히려 여성을 분리하고 배제시킬 명분만 강화된다. ‘이제는 여성도 군 복무가 가능하다’는 토대의 긍정적인 변화가 아닌, ‘앞으로 여자도 당해봐라!’라는 푸념으로 만들어진 어설픈 조치들은 낯선 공간에 유입된 새로운 이들을 기존의 고정관념을 총동원해서 난도질해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지금껏 군대는 ‘너희들은 앉아서 오줌 싸는 여자들하고는 달라야 한다’는 망언을 동기부여랍시고 떠들었고 심지어 여군들에게는 ‘너희들은 군인이지, 여자가 아니다’라면서 존재를 부정하라고 강요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어떻게 해석되겠는가. ‘군대에서도 징징거리는 여자’ ‘군대에서도 오또케 오또케 하는 여자들’이라는 빈정거림이 창궐하지 않겠는가.

행군 중에는 남자도 무수히 낙오되었지만, 앞으로 여성의 동일 사례는 ‘이러니 여자는 안 된다’는 근거로 활용될 거다. 그렇다고 훈련 강도를 조정하면 역차별이라고 발끈함이 분명하다. 웃긴 건, ‘여성다움’을 그렇게도 증오하는 군대가 지금껏 여군에게 섬세함, 단아함 어쩌고를 주문하면서 ‘여자답게’ 행동하라고 다그쳤다는 거다. 이런 곳에 여성이 가면 진정한 성평등이 아니라 진정한 불평등이 고착화될 뿐이다.

‘여자는 연약해서 전투를 할 수 없다’는 논지에 저항하는 군 복무 희망은 가치 있는 사회운동이겠지만, 국가의 직무유기를 함께 체험하자는 투쟁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보호자 중 여성들에게만 학교 급식당번을 시켰을 때, ‘남자도 급식당번을 하는 게 진정한 성평등’이라고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함께 차별받는 것으로 사회는 진보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다짜고짜 남성을 징집하는 현재의 군 복무 형태를 그나마 이 정도 수준에서 불합리하다고 언급할 수 있게 된 배경에, ‘군대 다녀와야지 사람 된다’는 실없는 소리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병역‘필’이랍시고 어깨에 힘주는 사람을 구닥다리라면서 냉소한 이들이 있었다는 거다. ‘남성성을 강요하는 사회’가 왜 문제인지 따져 묻는 분위기가 없으면 불가능했을 진전이다. 그게 바로 그토록 싫어하는 페미니즘이라는 건 아는지 모르겠다.

 

출저